저는 오랫동안 직업의 세계에서 경력을 쌓았습니다. 공학을 공부하고 기업과 컨설팅 현장에서 일했으며, 회사를 창업하고 경영했고 여러 기업의 이사회에도 참여했습니다. 그 시절의 경력은 비교적 분명했습니다.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책임을 맡았는지, 무엇을 이루었는지를 직함과 성과로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직업의 중심에서 물러난 뒤, 제 삶에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경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으로 이민해 낯선 사회에 다시 적응했고, 손주를 돌보며 여러 해를 보냈으며, 늙어가는 부모를 가족과 함께 돌보고 떠나보냈습니다. 은퇴 이후에는 남은 시간을 무엇에 쓰며 살아갈 것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들에는 직함도, 승진도, 급여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니 저는 그 시간 동안 끊임없이 배우고 판단하고 적응하며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하나의 질문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왜 직장에서 쌓은 경험은 경력이라고 부르면서, 한 사람을 오래 돌보고, 낯선 사회에 적응하고, 부모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하고, 은퇴 후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가면서 쌓은 경험은 경력이라고 부르지 않을까. 그 시간에도 사람은 배우고, 실패하고, 판단하고, 관계를 만들고, 때로는 이전의 자신을 바꾸어 갑니다. 그렇다면 경력은 반드시 직업 안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것이 제가 인간의 경험을 기록하기 시작한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육아, 부모 돌봄, 이민, 은퇴, 여행처럼 직업 밖에서 겪는 삶의 경험을 하나씩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경험은 사람에게 새로운 역량을 만들고, 어떤 경험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며, 어떤 경험은 이전의 자신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만큼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경력’이라고 단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각각의 경험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그 배움이 어떻게 축적되고 다른 삶으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어디까지를 경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를 기록과 인터뷰, 공부를 통해 살펴보려 합니다.
MEENAM SHINN(신미남)은 Northwestern University에서 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McKinsey & Company에서 컨설턴트로 일한 뒤 연료전지 벤처기업을 창업해 연구개발과 경영을 맡았고, 회사를 상장하고 매각하는 과정을 경험했다. 이후 ㈜두산과 K옥션에서 사장을 지냈으며, S-Oil과 LG에너지솔루션에서 사외이사로 활동했다.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는 부동산 투자 회사를 운영하는 한편, 손주 육아와 부모 돌봄, 이민과 은퇴라는 새로운 삶의 경험을 지나며 직업 밖에서 축적되는 배움과 변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현재는 이러한 경험을 ‘육아경력’, ‘돌봄경력’, ‘이민경력’, ‘은퇴 후 경력’, ‘여행경력’이라는 질문으로 확장하며 기록하고 있다.